[독서] 삼성을 생각한다 by 김용철


참.. 뭐랄까. 삼성은 애증의 기업인 것 같다.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대단한 회사이고, 이를 이뤄내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한 임직원들의 노력과 이건의 전 삼성 회장의 리더쉽은 분명 존경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월화수목금금금, 매일 매일 반복 되는 야근과 주말 근무, 권위주의적인 조직 문화를(까라면 까야 하는..) 엔지니어가 가져야 할 당연한 덕목으로 여기는 삼성의 문화 덕에 분명 대단한 기업이지만, 나를 포함한 일부 엔지니어들에게 삼성은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터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의 비자금에 대한 양심선언. 혹자는 삼성에서 호위호식 하다가 쫓겨나자 기업에게 돈을 더 뜯기 위한 악질적인 거짓 폭로전 정도로 매도하기도 하지만, 양심선언을 통해 그가 잃은 것 (평생의 인간 관계? 명예?), 삼성의 비상식적인 대응 방법, 언론의 이상할 정도의 침묵 등으로 판단해 보건데, 나는 김용철 전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의 양심선언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물론 책에는 일부 과장된 내용이나, 김용철 변호사의 개인의 기록과 기억, 판단만으로 쓰여져 왜곡된 내용도 많을 것이다. (실명으로 언급된 당사자들이 보면 억울해 할 내용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 중에서 진실을 찾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난 이 책을 보면서, 그 동안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삼성, 법원, 그리고 여러 사회 현상에 관한 실마리를 얻었다.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고발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그렇다면 비자금, 부당한 내부 지원으로 멍들지 않았다면, 도대체 삼성전자는 얼마나 더 대단한 기업이 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임직원 여러분. 정말 대단하십니다. 당신들이 진정한 승리자예요.

아래 기록들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던 내용들이다. 워낙 책 내용도 방대하고, 가슴에 와 닿는 메시지도 많아 인용한 부분이 많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꼭 사서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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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 46p. 이처럼 이명박 정부는 삼성 돈을 받은 공직자를 내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중용했다. 통상적인 기준에 따르면 승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을 법한 검사들인데, 승진한 경우가 있었다. 묘하게도 이런 경우는 대부분 삼성의 관리 대상자 명단에 포함된 검사였다. ‘삼성의 관리 대상자 명단’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출세 보증수표로 통하는 셈이다.

  • 56p.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돈을 펑펑 쓰던 시절이나 내 명의로 된 재산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나 삶의 행복은 큰 차이가 없더라는 것. 당장 밥 한 끼가 궁한 많은 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한가한 소리로 들릴 게다. 이런 지적 역시 옳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돈의 많고 적음이 행복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게 사실인데 말이다.

  • 95p. 특정 성향 판사에게 사건을 배당해서 법원 수뇌부가 원하는 판결을 끌어내는 관행은 삼성 사건에서만 문제가 된 게 아니다. 민병훈에게 삼성 사건을 배당했던 허만 판사는 촛불 집회 관련 사건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 촛불 집회 참가자들에게 높은 처벌이 가해지도록 유도하기 위해 특정 판사에게 촛불 집회 관련 사건을 몰아줬다는 것이다. 삼성특검 사건과 촛불 집회 관련 사건 재판이 진행될 당시, 서울 중앙지방법원장은 신영철이었다. 얼마 뒤, 그는 대법관이 됐다.

  • 98p. 2심 재판을 진행한 서기석 부장판사를 관리한 사람은 당시 제일모직 부사장이었던 황백이다. 그는 서기석과 경남고 동창이다. 이런 인연으로 그들은 예전부터 자주 어울렸다. 2심 재판을 앞두고 그들과 가까운 경남고 동문 사이에서는 “황백을 사장 한 번 시켜주자”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어느 경남고 출신에게서 들었다. 실제로 황백은 이듬해인 2009년 초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2심 재판에서 삼성은 삼성 에버랜드 CB 사건, 삼성 SDS BW 헐값 발행 사건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 137p. 비서실, 또는 구조본 직원이 계열사에 전화하여 “여긴 ‘실’입니다'” 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 계열사에서는 무리한 지시에 따라 업무를 처리할 때 책임을 면하려고 ‘실 지시에 의거’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이 공정위 등의 조사에서 자주 문제가 됐다. 그래서 나중에는 비서실 관여의 흔적을 일절 남기지 않도록 했다.

  • 142p. 실제로 삼성 사장단은 100억 원 대의 투자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모든 투자 결정은 비서실에서 한다. 사장들에게 투자손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계열사 사장을 임명할 때, 해당 사업에 대한 전문성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호텔신라 사장을 마친 뒤, 바로 석유화학 사장에 임영되는 경우도 있었다. 호텔에서 평생 일했던 자가 석유 화학 산업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 148p. 삼성이 한겨레에 막대한 광고를 제공했지만, 한겨레가 삼성에 비판적인 기사를 계속 싣는다는 이유로 광고 중단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이건희의 뜻이었다. 그런데 이순동 당시 홍보팀장이 한겨레와 대화 통로를 끊지 않으려면 계속 광고를 줘야 한다고 주장해서 가까스로 넘어간 일이 있다. 이정도가 팀장회의에서 ‘로열패밀리’의 의중을 거스른 결정이 내려진 거의 유일한 사례다.

  • 154p. 같은 회사 부하인 관리담당 역시 계열사 사장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다. 계열사 경영 실적을 평가해 구조본에 보고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관리담당이 계열사 사장보다 위에 있는 경우도 많다. 삼성 그룹 각 계열사의 관리담당이 누군지는 외부에 잘 드러나 있지 않다. 구조본 재무팀에는 각 계열사의 관리담당을 명시한 표가 있었다. 수사기관의 조사 등으로 위험한 시기가 되면 이 표는 폐기됐다.

  • 172p. 에버랜드 무료이용권이나 의류상품권을 현직 검사들에게 주기도 했다. 삼성에는 로비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상품권이 있다. ‘의류시착권’이라고 부르는데, 액면금이 겉에 표시돼 있지 않다. ‘의류시착권’의 액면금은 암호화돼 있으며, 20만 원, 30만 원, 50만 원, 80만 원, 100만 원, 150만 원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 174p.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의 내방객 명단을 특이했다. 여느 골프장은 함께 골프를 치는 팀 단위로 내방객 명단을 기록한다. 그런데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은 누가 누구와 골프를 치는지 알 수 없도록 명단이 작성됐다. 그리고 삼성 측은 이 명단을 매일 폐기한다고 했다. …중략… 당시 임채진 총장이 이런 의혹을 자신만만하게 부인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내방객이 누군지 알 수 없도록 돼 있는 이 골프장의 특징 때문이다.

  • 181p. 삼성의료원 병실 예약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부탁은 대부분 들어줬다. 그러나 철저하게 공익 목적으로 운영돼야 할 병원을 로비 목적에 이용한 것은 잘못이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 205p.  그래서 각 계열사 관리담당을 모아놓고 내가 공정위 조사 대응 메유얼에 대해 설명했다. “공정위 조사관이 영장을 갖고 올 수는 없다. 하지만 증표는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일단 증표를 확인하면서 시간을 끌어라. 그 사이에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다운받아 숨겨둔 뒤, 컴퓨터 속 자료는 지워라. 시간이 부족하면, 자료를 지우는 게 우선이다.” 이런 내용을 표로 만든 게 ‘공정위 체크포인트’다. 삼성에는 이런 종류의 메뉴얼이 많았다.

  • 208p. (검찰 조사에 대비하여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이해규 삼성중공업 부회장과 같은 원로에게는 김인주 사장이 직접 나서서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을 주며 협조를 부탁했다. 나도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 찾아가 현명관 부회장에게 시나리오 대본을 주면서 협조를 부탁하였는데 당시 현명관의 태도는 매우 냉소적이었다. 훗날 그는 특검 조사를 받으면서, 에버랜드의 두차례에 걸친 이사회에 참석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회장의 재산 관리는 구조본 재무팀에서 한다고 솔직하게 진술했다. 현명관의 이런 태도 대문에 삼성 측이 몹시 당황한 것은 물론이다.

  • 271p. 설령 권력의 정점에 있는 총수가 대단한 통찰력과 판단력을 지녔다고 해도 그렇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전자산업과 조선산업, 병원, 보험, 증권 등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리더십을 행사할 수는 없다. 게다가 총수의 지배권이 세습될 경우, 계속 뛰어난 사람이 물려받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삼성의 한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 큰 까닭에, 우연히 무능한 사람이 삼성을 이끌게 되면 한국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 이런 위험을 계속 방치해야 하나.

  • 273p. 삼성에서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사람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서 회사의 위상을 높인 사람이 아니다. 이건희, 이재용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대개 회사가 저지른 비리의 공범들이다. 삼성에서는 비리 공범이 돼서 수뇌부와 비밀을 나누느 사이가 돼야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반도체 기술자’ 보다 ‘비자금 기술자’가 위에 있는 구조인 셈이다.

  • 303p. 건설 비리 수사도 기억에 남는다. 건설 관련 비리는 워낙 규모가 컸다. 관급공사는 정상적인 경여논리, 경제논리, 기술논리가 통하지 않는 분야였다. 대신, 담합과 로비가 통했다. 이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 대통령이 된 것은 그래서 슬픈 일이다.

  • 339p. 삼성 비리에 대해 면죄부가 나온 이후, 경제범죄로 처벌받는다면 그는 ‘실패한 재벌’이거나 ‘재벌이 되지 못한 자’가 되는 셈이다. 이런 사례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 재벌’이 돼라. 그 과정에서 저지른 죄는 저절로 사면 받는다”라는 것.

  • 341p. 이건의 일가가 가진 지분을 다 합쳐도 1.07%다. 이처럼 불안정한 경영권을 승계하려니, 온갖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건희 – 이재용 부자는 상속 과정에서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아까워했다.

  • 366p. 삼성은 수시로 회계를 조작했다. 삼성중공업 2조원, 삼성항공 1조 6000억원, 삼성물산 2조 원, 삼성엔지니어링 1조 원, 제일모직 6000억원…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삼성계열사의 분식회계 규모다. 구조본 차원에서 지시한 일이다. 당시 회사채나 주식 발행도 안 되고, 대출도 안 됐다. 대출 연장도 안 됐고, 자금 조달 비용도 계속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수뇌부가 택한 게 분식회계였다.

  • 381p. 법원 수뇌부가 사건 배당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특정 판결을 유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법원 수뇌부가 이끌어내고 싶은 판결이 있다면, 수뇌부가 원하는 것과 같은 생각을 가진 판사를 골라 사건을  배당하면 되는 것이다. 삼성특검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 촛불시위 사건에 대한 가혹한 판결이 모두 이런 식으로 나왔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하는데, 법원은 사건 배당을 통해 말하는 셈이다.

  • 391p. 민병훈 부장판사가 진행한 삼성 1심 재판이 끝난 뒤, 나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 주류의 질서가 정말 튼튼하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들이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다는 것이다.

  • 403p. 한반도 대운하의 위험을 경고했던 한국건설기술 연구원의 김이태 연구원이 징계를 받았다. 또 국세청 내부 통신망에 한상률 전 국제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던 김동일 과장이 파면 당했다. 이는 부패와 비리를 보더라도 무조건 눈감으라는 신호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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