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디자인의 디자인 by 하라 켄야
- 독서노트
- 2020. 11. 8.
평점 : ★★ / 디자인에 관한 예시들로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순 있지만, 전반적으로 재미는 없다.
66p. 후카사와가 디자인한 CD 플레이어를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거의 '환풍기'와 유사한 형태이다. 중앙에 CD를 넣고 환풍기의 끈에 해당하는 위치에 설치된 코드를 잡아당기면 마치 환풍기가 움직이는 것처럼 CD가 회전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CD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뇌에 새겨진 환풍기의 기억이 작용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몸이 자기도 모르게 미세한 반응을 보인다. 특히 뺨 부근의 피부가 매우 섬세한 촉각 센서를 활성화해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려 한다. 그러나 바람은 오지 않고 대신 음악이 곁에서 들려올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이 사물과 디자인 간에 마법과도 같은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후카사와의 방법이다. 통상의 오디오 기기와는 발상이 다른 이 무인양품의 CD 플레이어는 세계적인 인기를 불러왔다.
88p. 그런데 왜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생각한 것일까? 더러워질 것을 뻔히 알았다면 애초에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 비닐이나 더러워져도 눈에 뜨이지 않는 짙은 색으로 사인을 만들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런 발상을 반대로 바꾸어 버렸다. 일부러 더러워지기 쉬운 천을 사용한 것이다. '더러워지기 쉬운 것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겠다.'라는 것을 실천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러워지기 쉬운 것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손님들을 위해서 최상의 청결함을 확보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출산을 앞둔 병원 실내를 부드럽게 보이도록 하고도 싶었지만 '최고의 청결함'이야말로 산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134p. 완전한 지평선을 촬영하기 위해 남미 볼리비아의 우유니라는 마을을 찾아갔다. 지금까지 방문한 이국의 마을 가운데 가장 먼 곳에 있던 마을 중 하나였다. 그곳은 표고 3,700미터의 안덱스 산맥 중턱에 있으며 부근에는 5,000-6,000미터급의 봉우리가 늘어서 있다. (중략) 우유니에 가면 왜 완전한 지평선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그 이유는 이 마을 가까이에 세계 최대급 소금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소금 호수는 정확하게는 바싹 마른 소금 평원이다. 순백색의 거대한 평면, 시코쿠 반 정도의 면적이 새하얀 들판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시계에는 360도 순백색 대지와 하늘, 즉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다.
179p. 이 대지에 겨우 다섯 개 정도의 방을 드문드문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32헥타르에 겨우 다섯 개. 그 규모는 완전히 상식을 뛰어넘지만 자연 속에서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이상향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여관 경영이 아니라 삼림 경영이다. 인공적인 것을 거절하고 자연의 리듬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장소를 경영하고 싶은 것이다. 공들여 무엇인가를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가져다주는 것을 기다린다.
중간중간에 흥미로운 예시들과 한 번쯤 가고 싶은 곳을 알게 된 점은 좋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재미가 없다. 평소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면, 디자인계의 거장(?)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 하지만, 나처럼 디자인이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예시가 없고, 저자의 철학(?)을 말하는 부분은 도대체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캐치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책의 초반과 마지막 부분은 정말 지루해서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음. 독서모임에서 다른 분들은 재밌게 읽으셨다고 해서 확실히 책은 취향을 타는구나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