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꼬꼬마이던 시절, TV토론은 나에게 그저 따분하고, 지겹고, 도대체 저런 걸 왜 방송할까 하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느 날 (아마도 시험 기간이 아니었을까?) 그토록 재미없어 하던 TV토론에 관심을 가지고 시청하게 되었다.
정확한 토론 주제는 기억 나지 않지만, 뭔가 한 쪽으로 확 기우는 그런 토론은 아니었고, 주제 자체가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고.. 뭐 그런 토론. 그런데 그렇게 지루하게 진행되어야 할 토론에서, 상대편의 크게 틀릴 것 없는 주장에 대해 논리 정연하게,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반론을 제기하며, 정말 저렇게 깔끔하게 옳은 말을 할 수 있나 할 정도로 빛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분이 바로 김근태 의원이셨다.
딱 한 가지 이상했던 점이, 그래도 전국민이 보는 방송인데, 왜 저렇게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말씀을 하실까 했었는데, 후에 그게 고문 후유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괜히 미안한 마음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게 되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민주화 투쟁이 앞장 서셨고, 그로 인한 옥살이와 고문으로 온갖 고생을 다 하셨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김근태 의원.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 이 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준 사람이 또 있었을까. 잘못된 선거 문화를 바로 잡고자, 모두들 쉬쉬하던 선거 자금 문제를 자진해서 양지로 끌어 내셨고,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정치 현안에 대해 대부분 (내 기준에서) 옳은 의견을 내셨기에, 언제나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고 있었던, 얼마 안 되는 정치인이셨는데..
너무 안타깝고, 씁쓸하고 그렇다. 부디 하늘 나라에 가셔서는 아픈 곳 없고, 후유증 없이 편히 지내시길.
故 김근태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